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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원의 어부사

새언덕 2010. 8. 17. 18:32

인생을 살다 보면 참으로 황당한 경우를 만나게 됩니다.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주변의 참소와 질투로 인생의 쓴 고배를 마시는 그런 경우 말입니다.뭐 한 세상 살다 보면 무슨 일이야 없겠습니까.
잘 나가던 인생 하루아침에 곤두박질 처 버리고, 도대체 알 수 없는 이유로 뒤죽박죽 되어있는 경우가 뭐 한 두 사람만의 일이겠습니까.

초나라 대부였던 굴원이 그런 경우를 그의 인생에서 당했습니다.
삼려대부라는 초나라 고위 공직에 있었던 굴원, 그를 질투하는 사람들의 모함으로 모든 자리에서 물러나고 자기 조국을 떠나고 방랑하는 신세를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굴원은 간신들의 모함으로 조국을 등지고 떠도는 자신의 신세를 돌아보며 그 유명한 어부의 노래 ‘어부사’를 지었습니다.
어부사는 추방당한 굴원과 그리고 어부의 대화로 이루어진 글로, 어부가 두 번 묻고 굴원이 두 번 대답하며 또 어부가 노래를 부르며 떠나가는 그런 구성으로 되어있습니다.
이 유명한 굴원과 어부의 문답은 역사 속에서 숱한 굴절의 삶을 살아갔던 수많은 사람들의 그 마음을 대변해 주었습니다.
오늘은 어부사를 읽으며 이 한 가을을 보내볼까 합니다.

 

어부가 이렇게 묻습니다.

“굴원! 그대는 초나라 삼려대부의 높은 직책에 있던 사람 아니던가. 어찌하여 이렇게 시골구석에 와서 떠돌고 있는가”
굴원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擧世皆濁인데 我獨淸이오 (거세개탁인데 아독청이오)
衆人皆醉인데 我獨醒이라!” (중인개취 아독성이라)

“온 세상이 모두 탁하고 흐린데 나만 홀로 깨끗하고, 온 세상 사람은 모두 취하였는데 나만 홀로 깨어있다!”

굴원의 생각은 확실하였습니다. 세상과 세상 사람들은 모두 흐리고 취해있는데 나만 유독 깨끗하고 깨어있다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요.
이런 세상에 대한 독야청청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그런 굴원에게 어부는 이렇게 말합니다.

“聖人은 不凝滯於物이오 能與世推移라!” (성인은 불응체어물이오 능여세추이라)

"훌륭한 성인은 온 세상 만사에 응체되지 않는다. 그리고 세상과 더불어서 그 추이를 함께 변해가는 것이다. "

여기서 응체는 집착하고 고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추이는 상황에 따라 변해가는 것이지요.
정말 위대한 성인이라면 응체의 생각을 버리고 추이의 사고로 전환하라는 그런 충고를 어부가 한 것입니다.
세상이 진흙탕이면 그 진흙탕을 튀기고 살면 되고 세상이 다 취해 있으면 옆에서 남은 술지개미라도 먹고 같이 취해서 살면 되지 뭐 그리 혼자 깨끗하다고 고집해서 이런 험한 꼴을 당하고 사느냐는 그런 어부의 회유였습니다.

이때 굴원이 이렇게 자신을 말합니다.
“新木者 必彈冠이오 新浴者 必振衣라” (신목자 필탄관이오 신욕자 필진의라)

새로운 머리를 감게 되면 반드시 갓의 먼지를 털고 쓸 것이고, 새로 몸을 씻었다면 반드시 옷을 털고 입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찌 내 깨끗하고 고고한 몸에 저 더러운 세속의 때를 묻히고 살겠는가? 차라리 이렇게 떠돌다가 저 강물에 빠져 물고기 밥이 될 지 언정 절대로 세속과 타협하고 살지 않겠다는 그런 다짐을 어부에게 말하고 있습니다.드디어 어부는 그 유명한 어부사의 하이라이트 대사를 외우며 노를 저어 강물을 따라 흘러갑니다. 역사 속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을 이야기해 왔고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삶을 위탁하여 읊고 있는 그 유명한 구절 바로 이겁니다

“滄浪之水淸兮어든 可以濯吾纓이오 (창랑지수청혜어든 가이탁오영이오)
滄浪之水濁兮어든 可以濯吾足이라” (창랑지수탁혜어든 가이탁오족이라)

창랑의 물이 맑고 깨끗하면 내 갓끈을 씻고 살면되고
창랑의 물이 탁하고 흐리면 내 발을 씻고 가리다.

정말 명문장입니다. 세상이여 다 내게 다가오라.
깨끗한 세상에서는 내 맑은 영혼을 그대로 유지하며 살면 될 뿐이고, 혼탁한 세상에서는 그저 내 발 한번 씻고 이 세상 떠나가리라
세상이 혼탁하든 깨끗하든. 그것이 내 인생을 어떻게 하지 못한다.
그저 묵묵히 세상에 맞춰 살다 가면 될 뿐이다.

어쩌면 여기서 굴원에게 이렇게 설득한 어부는 또 다른 굴원, 마음속에 있는 그 굴원의 모습이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어부와 굴원은 어쩌면 우리 가슴속에 늘 존재하는 나와 또 다른 나의 모습이 아닐까요?
많은 사람들이 하루하루 정말 정신 없이 살고 계신데, 혹시라도 세상 살다가 험한 일 당하신다면 이 굴원의 어부사를 한번 읽어보십시오.어떤 방식으로든 그 막혔던 심사가 훤하게 뚫리고 정리됨을 경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전체원문입니다.>

漁 父 辭(어부사) .....屈原(굴원)

屈原旣放 游於江潭 (굴원기방 유어강담) 

     굴원이 이미 쫓겨나 강가와 물가에 노닐고

行吟澤畔 顔色樵悴 形容枯槁 (행음택반 안색초췌 형용고고)

     못가에서 시를 읊고 다니는데 얼굴색은 초췌하고 모습은 수척해라

漁父見而問之曰, 子非三閭大夫與 (어부견이문지왈 자비삼려대부여)

     어부가 보고 묻기를 “그대는 삼려대부가 아니시오”

何故至於斯 屈原曰 (하고지어사 굴원왈)

     무슨 까닭으로 이 지경에 이르셨습니까 하니. 굴원이 말하길

 

擧世皆濁 我獨淸 (거세개탁 아독청 )

     세상이 다 혼탁한데 나 홀로 깨끗하고

衆人皆醉 我獨醒 (중인개취 아독성)

     모든 사람이 다 취해 있는데 나 홀로 깨어 있었네

 

是以見放 漁父曰 (시이견방 어부왈)

     이런 연유로 추방을 당했네, 이에 어부가 말하기를 

聖人 不凝滯於物 (성인 불응체어물)

     성인은 세상 사물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而能 與世推移 (이능여세추이)

     세상을 따라 변하여 갈 수 있어야 하오

 

世人皆濁 何不淈其泥而揚其波 (세인개탁 하불굴기니이양기파)

     사람들이 모두 탁하면 어찌 흙탕물을 휘저어 물결을 일으키지 않으며,

衆人皆醉 何不飽其糟而歠其醨 (중인개취 하불포기조이철기리)

     사람들이 모두 취해 있으면 어찌 술지게미를 먹고 박주를 마시지 않으 시오

 

何故 深思高擧 自令放爲 (하고 심사고거 자령방위)

     어찌 깊이 생각하고 고결하게 처신하여 스스로 쫓겨남을 당하시오

屈原曰 吾聞之(굴원왈 오문지)

     굴원이 말하기를, 내가 듣건대

 

新沐者 必彈冠  (신목자 필탄관)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관을 털어서 쓰고,

新浴者 必振衣 (신욕자 필진의)

    새로 목욕한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어서 입는다고 하였소.

 

安能以身之察察 受物之汶汶者乎 (안능이신지찰찰 수물지문문자호)

      어찌 맑고 깨끗한 몸으로 더러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소

寧赴湘流 葬於江魚之腹中 (녕부상류 장어강어지복중)

     차라리 상수에 몸을 던져 물고기 뱃속에 장사를 지낼지언정

安能以皓皓之白 而蒙世俗之塵埃乎 (안능이호호지백 이몽세속지진애호)

     어찌 결백한 몸으로서 세속의 티끌과 먼지를 뒤집어 쓸 수 있겠소

漁父 莞爾而笑 鼓枻而去 乃歌曰 (어부 완이이소 고설이거 내가왈)

     어부는 빙그레 웃으며 노를 두드리고 떠나가면서 노래하기를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창랑지수청혜 가이탁오영)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 끈을 씻고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창랑지수탁혜 가이탁오족)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


遂去不復與言 (수거불부여언)

     마침내 떠나가고 다시는 더불어 말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