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제한법의 비밀
이자제한법의 비밀
이자제한법이라는 게 있습니다.
고리대금의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 채권자가 받을 수 있는 이자율의 최고 상한을 정한 법입니다.
현재 최고 상한은 연30%로 정해져 있습니다.
또한 이자제한법은 채무자가 실제로 받은 금액만을 원금으로 보며,
채권자가 수수료나 공증비 등 온갖 명목으로 뜯어내더라도 이를 이자로 보고 계산하기 때문에,
법의 적용대상이 되는 경우 연30% 이상을 뜯어내기가 쉽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즉, 채권자가 어렵고 궁핍한 처지 등 때문에 어떻게든 돈을 빌리려는 채무자를 상대로
우월적이고 독점적 지위를 남용하여 폭리를 취하더라도,
채무자가 이자제한법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법률의 정한 최고이자율 범위로 피해를 줄일 수 있고,
초과로 지급한 이자(채권자의 부당이득금)에 대해서는 반환받을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이자제한법이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실효성 있게 작동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즉, 현재의 이자제한법은 적용대상이 되는 대출거래에서 민사 분쟁이 생기고
채무자가 이자제한법을 기준으로 현명하게 대항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법의 취지가 온전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자제한법이 실효성 있게 작동되지 못하는 데에는
직접적으로 크게 세 가지 비밀이 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비밀은 돈 놀이를 “업”으로 하는 모든 사람들(대부업자, 금융기관 등)에게
이자제한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이자제한법 제7조(적용범위)를 보면, “다른 법률에 따라 인가·허가·등록을 마친 금융업 및 대부업과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제9조의4에 따른 미등록대부업자에 대하여는
이 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못 박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돈 놀이를 “업”으로 하는 대부업자와 금융기관에게는
있으나 마나 한 법률, 이것이 현재 이자제한법의 실상입니다.
두 번째 비밀은 이자제한법을 위반하더라도,
처벌을 할 수 있는 규정(벌칙 조항)이 없다는 것입니다.
돈놀이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두 번째 비밀은 매우 유익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재수 없어봐야 최고이자율을 초과하는 금액만 뱉어내면 그만이고,
따라서 최악의 경우조차 법령의 최고이자율에 해당하는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이자제한법의 두 번째 비밀을 악용하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사채 • 대부업자에게 뒷돈을 대주는 이른바 “쩐주”(돈의 주인)들입니다.
이들 중에는 현직 검사, 현직 경찰, 현직 공무원, 현직 정치인,
대기업의 임원 또는 이들의 배우자나 고위 공무원의 배우자까지 있습니다.
이들은 사채업자(대부업자)를 끼고 또는 직접 채무자의 주택 등에 대해
자신의 명의로 근저당 설정등기까지 했으면서도, 나는 대부업자가 아니므로
대부업법 관련 처벌조항에 대해 해당사항이 없다며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갑니다.
필자의 최근 상담 사례 중에는 학교법인이 서류를 편법으로 조작해서
서울시 교육청 허가까지 받아 불법 돈 놀이를 하고, 서류상 원금 부풀리기 수법으로
원금 기준 약 4억 원 이상의 금액을 배당으로 청구한 사례도 있습니다.
세 번째 비밀은 최고이자율이 연30%로 지나치게 높게 설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온갖 아이디어와 신기술 등을 짜내고 과도노동까지 마다하지 않는
매우 혁신적인 기업들도 연30%의 수익률을 안정적으로 기대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이자제한법은 생산적 활동을 하는 기업에 비해서는
지극히 하찮은 수준의 품을 들이는 금전거래에서 연30%까지 합법적으로 보장해주고 있습니다.
다른 측면에서 보더라도, 현재의 연30%는 터무니없이 높습니다.
우선 97년까지 이자제한법령에서의 최고이자율은 연25%였는데,
그 때에 비해 시장평균이자율이 약 10%나 하락한 지금은 오히려 과거의 기준보다 5% 더 높습니다.
외국의 입법례에 비해서도 과도하게 높습니다.
일본, 유럽, 미국의 각 주들은 소액대출에서의 약간의 예외(일본: 10만엔 미만 연20%,
캘리포니아: 면허가 있는 전당포업자의 225달러 이하의 소액대출 연30% 등)를 제외하면,
연 10%대 중후반(예: 미국의 뉴욕 주 500달러 이하 연18%, 500달러 초과 연12% 등)에서
법령 최고이자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고액대출을 받은 사람들에게 연30%는 그야말로 살인적인 수준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연5~6%대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사람들에게도 연1%의 금리 인상은 죽을 맛인데,
이들보다 분명히 더욱 절박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최소 5배나 많은 이자를 감당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98년 어처구니없게 폐지했다가 어렵게 복구된 이자제한법(2007년 6월 30일부터 시행)은
이와 같이 총 맞은 것처럼 핵심적인 부분에서 구멍이 뻥 뚫려 있습니다.
최근 국회에서 이자제한법의 구멍 뚫린 부분들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참고로, 국회 의안정보시스템(http://likms.assembly.go.kr/bill/jsp/main.jsp)에서 검색해보면, 현재 국회에는 4개의 법안이 계류 중입니다.
○ 처벌규정을 진전시키되 최고이자율을 일부 후퇴시킨 안(민주당 박병석 의원 대표발의),
○ 처벌규정 없이 법률의 상한을 연30%(현재 법률 연40%, 시행령 연30%)로 조정하고
대부업자와 금융기관 모두에게 적용되도록 하는 안(한나라당 이범래 의원 대표발의),
○ 처벌규정 없이 대부업자와 금융기관 모두에게 적용되도록 하는 안(민주당 김부겸 의원 대표발의),
○ 법률의 상한만 30%로 조정한 안(자유선진당 임영호 의원 대표발의)이 그것입니다.
참조(송태경 민생연대 사무처장 2011년 4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