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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 한 개

새언덕 2012. 10. 5. 14:00

그대 구월이 오면

구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

뒤 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 번 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것을

그 때 강둑 위로

지아비가 끌고 지어미가 미는 손수레가 머무는

인간의 마음을 향해 가는 것을

 

그대 구월의 강가에서 생각하는지요

강물이 저희끼리만 속삭이며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젖은 손이 닿는 곳마다

골고루 숨결을 나누어 주는 것을

그리하여

들꽃들이 피어나 가을이 아름다워지고

우리 사랑도 강물처럼 익어가는 것을

 

사랑이란

어찌 우리 둘만의 사랑이겠는지요

그대가 바라보는 강물이

구월 들판을 금빛으로 만들고 가듯이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사람과 더불어 몸을 부비며

우리도 모르는 남에게 남겨 줄

그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을

구월이 오면 구월의 강가에 나가

우리가 따뜻한 피로 흐르는 강물이 되어

세상을 적셔야 하는 것을

 

안도현님의 ‘구월이 오면’입니다.

주위 풍경이나 마음의 움직임을 주제로 그 달의 이름을 정했던

인디언들은 9월을 이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검정나비의 달/체로키 족

사슴이 땅을 파는 달/오마하 족

풀이 마르는 달/수우 족

작은 밤나무의 달/크리크 족

옥수수를 거두어들이는 달/테와 푸에블로 족

 

적어도 나에게는,

神의 언저리에 둘수 있는 인디언들의 구월이 참 재미있습니다.

요즘 물가에 가면 (검은)물잠자리들의 종족보존을 위한 유희가 어지럽습니다.

사슴의 생태를 잘 알지 못하니 왜 땅을 파는지는 모르겠으나

9월의 건조한 바람이 풀잎을 까칠하게 만들고키작은 밤나무도 가지가 휘도록

탐스런 밤송이를 매달고 있습니다.지난 여름내 좋은 간식거리였던 옥수수도

씨앗을 만들어 잘 갈무리 해두었다가 내년 농사에 쓸 것입니다.

온통 회색빛에 둘러쌓인 도시에서 묻혀사는 사람들에게는

자연과 하나로 사는 그들의 지혜를 감히 따라갈 수 있겠나 싶습니다.

당신은 9월에게

어떤 이름을 붙이고 싶으신지요.

저는 ‘눅눅해진 내 몸과 마음을 포쇄(曝灑)하는 달'

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조병화 시인은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의 여름만큼 무거워지는 법이다.

스스로 지나온 그 여름만큼...

또한 그만큼 가벼워지는 법이다.

그리하여 그 가벼운 만큼이나 가벼이 가볍게 가을로

떠나는 법이다."라고 했습니다.

  

시인의 바램처럼 가을이 와서 내가 가벼워지고 님께서도 가벼워 진다면

그래서 아주 편한 마음으로 가을속으로 여행을 떠날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여여 하신지요?

실은 그렇지 못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늦은 태풍으로 농가에 피해가 많다지요.

농가뿐이겠습니까만 결실을 준비하며 땀흘리는 분들이

억장이 무너질 것 같아 속이 상합니다.

모든 농작물 가격이 적어도 2배 이상은 올랐다고 집사랑도 걱정을 합니다.

한참 더울 때 그렇게도 기다리던 비는 오지도 않더니,

수확할때 많은 비가 퍼부었으니 참으로 걱정입니다.

  

화려한 가을을 주시려고 이렇게 시련을 주는것 같습니다.

이 기운들이 물러나고 평화와 결실의 기쁨을 다시 느낄 수 있는

평온의 날들을 희망합니다.

  

더위를 처분한다는 처서(處暑)를 흘러보낸지 한참이 지났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 가을을 예감하게 하는 시기입니다.

무거운 그림자를 질질 끌고 다니던 여름은 가고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성큼 성큼....

  

태풍으로 장마로 힘든 시간이었지만 모처럼 하늘이 열렸습니다.

그리운 얼굴을 비추기 위해, 그리운 사람의 눈을 적시기 위해

가을은 구름 밭에 파란 우물을 파고 있는 듯합니다.

바람 또한 어제의 바람이 아닙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느끼는 바람은 어떠하였는지요?

  

아일랜드 사람들은 바람을 종류별로 나눴다고 하지요. 

아이가 출생할 때 서풍이 불면 검소한 사람이 태어나고,

남풍이 불면 주변에 사람들이 많은 사치스러운 사람이 태어나고,

북풍이 불면 전사(戰士)가 태어나고,

동풍이 불면 부자가 태어나고,

바람이 없는 무풍 일에는 바보가 태어난다고 여겼습니다.

바람은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지만, 영향은 분명히 미치는 것이지요.

 흔히 처서는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라고 할 정도로

여름이 가고 가을이 드는 계절의 엄연한 순행을 드러내는 때입니다.

 

처서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 풀이 더 이상 자라지 않기 때문에

논두렁의 풀을 깎거나 산소를 찾아 벌초를 합니다.

콩 농사가 잘되어야 메주도 쑤고 된장에 고추장도 담가서

딸네, 아들 눔도 나눠 주고,,,

모종한 채소들 주위로 올라온 잡초들을 호미로 뽑으시는 어머니

빛바랜 하얀 해진 수건을 머리에 둘러고 그랬습니다.

흡사 어머니의 그 모습이 

박수근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머리에 흰수건을 동여맨  그 풍경이었습니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 때면

이 눔들 하루하루 커가는 재미로 위안을 삼으시고

때가 넘어서야 찬밥에 물 말아

텃밭의 저 가랑이 사이의 쑥쑥 큰 바랭이 풀 마저 뽑으시는 어머니

그렇게 나를 키우셨던 내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요즘 살아가기가 모두 어렵다고 합니다. 

'상상일이(常想一二)' 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늘 한, 두 가지를 생각하라.'

  

세상에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열에 여덟, 아홉이라지요.

그러니 뜻대로 되는 기분 좋은 일 한둘을 늘 생각하고

그 일을 넓혀 나가라는 말이지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만이 열에 아홉 가지 일이 다 잘 안된다고들 생각합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잘 살면 잘 사는 대로 또 못살면 못사는 대로 모두가 아픔이 있을 테지요.

나만 무덥고 힘들게 느껴지는 여름인 듯하나

모두가 뜨겁고 짜증나는 여름이요,

나만의 겨울인 듯하나 알고 보면 모두의 겨울이요,

 

모두의 봄인 것입니다.

복된 사람은 열에 아홉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늘 한, 두 가지의 기분 좋은 일로 만족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50대 전후의 사람들은 쓰임새는 가장 커지는데

직업의 불안함, 준비되지 못한 미래와 과중한 업무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살아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해 할 줄 알아야지요.

1956년 집계된 우리나라의 평균 수명은 42세였다고 합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2006년 현재 평균 수명은 51세였습니다.

이들과 비교해 보면 지금의 삶은 덤이요 보너스입니다.

아홉 가지의 미움이 보이더라도 한 가지 밝은 미소를 떠올리며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불만과 탄식을 하느냐?

한, 두 가지라도 새로운 희망을 찾아가며

만족하느냐가 행, 불행을 가른다고 생각하시지요.

푸른 하늘과 꽃 한 송이를 품으면 늘 새롭고 즐겁습니다.

맑은 눈과 따뜻한 말 한 마디를 떠올리면 모두가 형제요, 자매가 됩니다.

  

무한히 계속될 것 같던 여름도 계절의 질서 앞에서는 이토록 속절없습니다.

가을을 실어 나르는 바람이 반가운 것은

우리가 인내한 지난 여름이 그만큼 뜨거웠기 때문일 터입니다.

태풍으로 폭우로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곤란에 빠졌던가요. 

  

우리의 조상은 참으로 지혜가 있었습니다.

처서 지나면 아무리 더워도 잔서(殘暑)라 하여 과감히 더위와 맞서며

인내할 줄 알았습니다.

처서가 지나면 주요한 일상 중의 하나는 포쇄(曝灑)였습니다.

포쇄의 사전적 의미는'바람에 쐬고 햇볕에 말린다.'는 뜻이지요. 

‘농부는 곡식을, 부녀자는 옷을,

선비는 책을 말린다고 했습니다.

  

농가월령가에도

“장마를 겪었으니 집안을 돌아보아 곡식도 거풍(擧風)하고

의복도 포쇄하소.” 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장마와 더위에 눅눅해져 곰팡이가 핀 옷가지와 책 등속을 말리는

포쇄는 어쩌면 가을을 맞는 통과의례였을 겁니다.

높푸른 하늘에 내걸린 흰 빨래가

바람에 몸 흔들며 눈부시다

가을볕이 너무 좋아

가만히 나를 말린다

내 슬픔을

상처 난 욕망을

투명하게 드러나는

살아온 날들을”...

  

제 마음에 눅눅함도 모두 펼쳐 내어 이 따습한 햇살에 포쇄를 하렵니다.

그리고 농부가 밭을 갈듯 제 마음 밭또한 다시 곱게 갈아 볼 작정입니다.

  

들판이 노랗게 가을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결실의 계절입니다.

지그 지글리 박사의 '세계의 지혜'라는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루는 왕이 현인들을 불러서 '세게의 지혜를 정리해 오라'라고 명했습니다.

 

현인들은 세계의 지혜를 다 모아 12권의 책으로 만들어 왕에게 보였다지요.

왕은 '분량이 너무 많으니 좀 줄여보라고'고 했습니다.

그래서 현인들은 12권의 분량을 1권으로 줄였습니다.

왕은 이것도 많으니 더 줄여 오라고 하였고 결국엔 줄이고 줄여서

너온 말이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어머님이 이 책을 분명 학습하지는 않으셨을 터인데

어릴 적 자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도 가끔 하십니다만,

'아들아, 세상엔 공짜가 없는 법이란다. 땀흘리지 않고도, 노력하지

않고도 좋고 가치있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없단다.

무엇이든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반드시 지불해야 하는 법이란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며 네가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며  꼭 명심해야 할 말이란다'

네,

어머니, 지금도 그때 제게 해주신 어머니의 말씀을

잘 기억하고 실천하려 합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리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저 혼자서 둥글어질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달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장석주 시인님의 대추 한 개 라는 시입니다.

대추가 세상을 통하였듯이 어머니께서 제게 들려주었을 적

어머니 연세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아진 이제서야

못난 아들은 어머니의 말씀이 저를

세상을 통하게 하고 있습니다.

  

대추가 그냥 익지 않듯이 오늘 하루도 내일의 결실을 위한 노력의 

하루가 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