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게 살기

원이 어머니의 굄 글

새언덕 2010. 11. 10. 11:04

 

庚寅年 한해가 저미어가는 12.1일부터 12월2일까지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조선시대의 애절한 러브스토리를 소재로 한 창작 오페라 "원이엄마"를 공연한다고 해서

그 소회를 담아보았습니다.

 

 

 원이 엄마의 사부곡....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 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해도 나는 살 수가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 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 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原 文
 

원이 아바님께

  

병슐 뉴월 초하룻날 집에서

 

자내 샹해 날드려 닐오되 둘히 머리 셰도록

사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엇디하야 나를 두고 자내 몬져 가시노


날하고 자식하며 뉘긔 걸하야 엇디하야 살라하야
다 더디고 자내 몬져 가시는고

 

 자내 날 향해 마음을 엇디 가지며
나는 자내 향해 마음을 엇디 가지런고

 

매양 자내드려 내 닐오되 한데 누어 새기보소


남도 우리같이 서로 어엿비 녀겨 사랑호리
남도 우리 같은가 하야 자내드러 닐렀더니

 

엇디 그런 일을 생각지 아녀 나를 버리고 몬져 가시난고

자내 여히고 아무려 내 살 셰 업스니  

수이 자내한테 가고져 하니 날 데려가소

 
자내 향해 마음을 차승(此乘)니 찾즐리 업스니 아마래 션운 뜻이 가이 업스니
이 내 안밖은 어데다가 두고 자식 데리고 자내를 그려 살려뇨 하노
이따 이 내 유무(遺墨) 보시고 내 꿈에 자셰 와 니르소
 

내 꿈에 이 보신 말 자세 듣고져 하야 이리 써녔네

자셰 보시고 날드려 니르소

 

자내 내 밴 자식 나거든 보고 사뢸 일하고 그리 가시지

 밴 자식 놓거든 누를 아바 하라 하시논고

아무리 한들 내 안 같을까

이런 텬디(天地)같은 한(恨)이라 하늘아래 또 이실가

 

자내는 한갓 그리 가 겨실 뿐이거니와 아무려 한들 내 안 같이 셜울가

그지 그지 끝이 업서 다 못 써 대강만 적네

 

이 유무(遺墨) 자셰 보시고 내 꿈에 자셰히 뵈고 자셰 니르소

나는 다만 자내 보려 믿고있뇌 이따 몰래 뵈쇼셔

 

하 그지 그지 업서 이만 적소이다

 

-- 이토록 가슴 시리고 아름다운 사랑도 없을 것입니다.

400여년전 조선시대 아낙 원이엄마가 사별한 남편에 대한 원망과 사랑이 담긴 절절한 편지글입니다.

 

1998년 경북 안동시 정상동  주인 없는 무덤을 이장하는 과정에서 명정(무덤에 덮는 천)에

‘철성이씨’(고성이씨)라고 적힌 무덤 하나가 발견됐습니다.

지표조사를 맡은 안동대 박물관은 고성이씨 문중의 입회하에 무덤의 부장품을 정리하던 중

이응태라는 이름과 가로 58㎝, 세로 34㎝의 한지에 빼곡히 써내려간 한글편지 한 통을 찾아냈답니다.

“원이 아버지께. 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로 시작되는 편지는

남편을 잃은 아내의 서럽고 쓸쓸하고 허망하며 안타까운 사연이

뜨거운 눈물이 되어 온 땅을 적시고 있는 사부곡입니다.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현대에 와서도 이보다 더한 사랑의 표현은 보기 어려운 글입니다.


아내가 쓴 편지의 병술년이라는 대목과 형(이몽태)이 '울면서 아우를 보낸다'는 제목의 시 가운데

"아우와 함께 부모를 봉양한 지 31년"이라는 대목이 있어

이응태는 1586년, 서른 한살의 나이에 숨진 것으로 파악된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지아비를 이렇게 젊은 나이에 떠나보낸 젊은 아내의 심정이 오죽 비통하겠습니까.

 

원이라는 이름의 어린 아이와 뱃속에 아이를 가진 젊은 아내는

남편 잃은 설움을 편지로만 표현하기엔 부족했는지

삼과 머리카락을 함께 꼬아 삼은 미투리를 무덤 속에 넣어두었답니다.

평소 입던 치마와 원이가 입던 저고리도 함께 묻었다네요.

 

이런 내용은 ‘내셔널 지오그래픽’ 2007년 11월호에 소개되고,

2009년에는 국제고고학 잡지 ‘앤티쿼티’에 실리기도 했답니다

‘조선판 사랑과 영혼’의 글이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만남과 이별의 소중한 인연을 노래한 만해의 시를

만신창이로 만드는 현대인의 가벼운 풍조를 서글프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