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만든 책보다 책이 만든 사람이 더 많아!
대망(大望)을 읽을래? 사표를 낼래?
‘70년대 초에 중동의 유가 폭등으로 기업이 어려울 때에 삼성에서는 장기적으로 양성한 인력을 감원하기보다는 고통을 분담하면서 재기를 다지자는 생각으로 “대망을 읽을래? 사표를 낼래?”라고 독서를 권장한 적이 있다. 대망은 일본 대하소설 “德川嘉康(도꾸가와이에예스)”를 번역한 책이었다. 줄거리는 우리나라의 임진왜란을 전후한 일본 막부정치를 배경으로 오다 노부나가 - 도요토미 히데요시 - 도꾸가와 이에예스가 파란만장의 권력을 쟁탈하는 모습과 인간으로 고민을 다룬 책이다.
기억나는 구절을 소개하면, “수양(修養)이란 심산유곡(深山幽谷)에서 마음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부대끼면서 눈물을 흘리고 이를 가는 것”이라고 했다. “정예(精銳)란 적이 잠자는 사이에 칼날을 가는 것이다. 사나이 칼은 마음에 간다.”는 말이며,“유능한 독수리는 발톱을 감춘다.”라는 일본사람들의 외면(다데마에,建前)과 내면(혼네,本音)이 다름을 간파하게 한다.
우리의 조상들은 정보를 중히 여겼다. 평시에 상대방의 정보를 위하여 세작활동을 부지런히 했으며, 전시에는 간자(間者)를 활용하는 용간(用間)을 중히 했다. 손자병법에서도 “상대방의 정황을 먼저 살펴야 한다(先察其情)”고 하였다. 국왕에게도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위하여 관리들에게 여가를 주면서 독서를 하도록 사가독서제(賜暇讀書制)를 시행했다. 뿐만 아니라 중요한 정책과제에 대해서는 적임자에게 자문을 구하는 책문(策問)을 하였다.
당나라 시인 두보는 “제백학사모옥(題柏學士茅屋)”라는 시에서 “부귀는 반드시 부지런하고 고생 뒤에 얻어지는 것이니 남자라면 모름지기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富貴必從勤苦得 男兒須讀五車書)”라고 할 정도로 정보를 중시하였는데, 지식정보사회를 사는 우리들에게는 한 해 책 한권을 읽지 않는 것은 두보 선생님이 들으시면 “책을 읽을래?, 죽을래?”라고 하실 것이다.
혁신은 학습이고, 독서인데 !
일본에서는 아직도 관리에게 견문보고제도라는 책문제도를 유지하고 있고, 책을 사주는 등 독서를 통한 전문가로 거듭나기를 제도로 실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김영삼 대통령 때에 청와대에 일본소설 “횃불(하다레)”을 사서줘 읽게 하였다. 최근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혁신과제로 독서목표제를 시행하고 있다.
최근에 경제특구 및 영종도 개발 등으로 상전벽해의 발전을 하고 있는 인천광역시의 변혁의 원동력은 아마도 공무원에게 매월 2권 이상 독서하는데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 독서를 하고 발표하면, 좋은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것이 바로 위키페디아(wikipedia.com)의 신화를 만들었다. 미국의 학생들이 가장 많이 활용하는 웹 사이트가 되었다. 서울시에서는 시민으로부터 정책아이디어를 수렴하기 위한 속칭 위키노믹스(Wikinomics)을 들고 “천만상상오아시스(seouloasis.or.kr)” 웹 사이트를 통해서 구하고 있다.
‘80년대 서울 청량리역 앞에 야바위꾼이 박보장기를 두고 있는데 한 젊은 대학생이 판에 놓인 장기를 보니 몇 수 안에 이길 것 같아서 5만원을 놓고 게임을 했다. 결과는 잃었다. 박보장기는 한수라도 잘못 가면 못 이기기 때문에 정해진 기보가 있다. 화장실에 갔다가 와서 다시 하겠다고 하면서 가지 말라고 해서 야바위꾼은 기다리고 있었다. 그 학생은 서점에 가서 박보장기에 대한 책을 찾아보고 와서 호주머니를 털어서 전재산을 놓고 올인게임(all-in game)을 했다. 결과는 멋지게 이겼다. 책은 이런 것이다. 문제해결의 단서를 혹은 코드(code)를 제공하는 것이다.
과연, 미래의 부(revolution wealth)는 무엇일까?
John Dewey의 말이 “대학을 가기보다 도서관에서 책을 보면 7배의 지식을 익힐 수 있다.”고 했다. 교육선진국이라는 영국이나 미국에서도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홈 스쿨링(home-schooling)을 하거나 심지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A에서 Z까지 외우게 하는 경우도 있다. 대단한 지식의 량이다.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도 매일 1권의 책을 읽는다고 한다. 고려말 독서 만권 이상을 독파한 만권당(萬卷堂)이라는 모임도 있었다. 요사이도 자기 개발프로그램으로 “독서 1,000권”을 목표로 4개년계획을 하는 사람도 있다. 1,000권은 대단한 지식이다. 하버드대학 박사는 전문서적 400권 수준이라고 평가를 하고 있다. 이 잣대로 측정할 때에 박사학위 2개 나 받을 지식의 양이다.
지식정보사회에서 지식이 경제적 자본으로 등장하고 있다. 미래의 부(future wealth)로 지식이 더욱 굳건한 자리매김을 할 것이다. 2005년에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미래의 부(revolutionary wealth)"라는 저서를 내놓았다. 혁신의 부(wealth)로 1) 속도(speed), 2) 공간(space), 3) 지식(knowledge)을 언급하였다. 특히 쓰레기 지식(obsoledge: obsolete knowledge)을 버리기를 강조하고 있다.
오늘날 교육은 배우면 배울수록 무식한 사람만 양산하고 있다. 목불식정(目不識丁)의 무식이 아닌 박사학위 가진 자의 무식(doctorial ignorance)이다. 배운 만큼 개인이나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고 해악만 끼치기 때문이다. 법률전문가일수록 법을 악용하고, 개발정보를 악용하여 개인의 부를 챙기고 사회를 혼란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지식이 바로 쓰레기 지식(obsoledge)이다.
학생(學生) : 배움이 곧 삶이다.
이와 현상에 대하여 교육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반성의 목소리를 내었다. 지덕체(智德體)를 갖춘 전인적 교육(whole-person education)을 하자는 것에서 최근에서는 평생교육(life-education)으로 흐르고 있다. 우리 선인들은 죽은 사람의 영전에서도 “학생(學生) 부군신위”이라는 용어를 썼다. “배움이 곧 삶이다. 사다는 것이 곧 배움이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의 선인들은 기원전부터 서양에서 오늘날 언급하고 있는 혁신의 부(revolutional wealth)에 해당하는 언행일치(言行一致), 실사구시(實事求是) 등을 추구하여 왔다. 학문(學問)이란 용어 자체가 이를 의미하고 있다. 물론 학문이란 박학심문(博學審問)의 준말이다. 보다 자세히 말하면 아래와 같은 5단계의 참다운 지식으로 실천궁행(실천궁행)하는 것을 학문이라고 했다.
첫째단계 박학(博學)으로 광범위하게 잡학을 해야 한다. 지식의 기반을 넓게 터를 잡아야 깊게 들어갈 수 있다. 좁게-깊게는 곧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넓게-깊게는 한계가 없다.
둘째단계로는 심문(審問)이다. 배운 것을 자연, 사회, 직장 혹은 좁게는 자신의 업무에 적용해서 의문도 갖고 자문도 구하며, 물음을 가져봐야 한다.
셋째로는 명변(明辯)으로 사고방식, 사고의 폭, 시각 혹은 입장을 달리하여 생각을 해보자는 것이다. 명백하게 논박도 하고 대의명분을 강구하는 것이다. 크게 국가의 사업이나 개인의 입장에 대한 설득논리, 대응논리, 반박논리를 찾아보는 것이다.
넷째로는 심사(深思)다. 보다 깊이 생각하자. 역지사지(易地思之) 하고, 뒤집어 생각하며, 배후에 도사리는 것도 보고, 행간을 읽어보는 것이다. 때로는 역발상도 해보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독행(篤行)이다. 배우고 행하지 않으면 배운 자의 무식(doctorial ignorance)을 보일 뿐이다. 벼처럼 배울수록 고개를 숙이고, 속이 차는 그런 배움이 필요하다. “당신이 무엇을 안다고..”라는 무시함보다는 겸손하며 참신한 생각이 필요하다.
어릴 때에 겨우 국민학교(일제가 皇國臣民을 양성하고자 개칭한 오늘날 초등학교에 해당) 를 졸업하였다. 그러나 가세가 곤궁하여 중학에 들어가지 못하고 시골서당에서 한문을 배웠다. 명심보감(明心寶鑑)을 배웠는데 글만 배우지 않고 반드시 글귀에 해당하는 실천덕목을 행하고 나서야 다음 편으로 넘어갔다. 효행편을 배울 때에 아침저녁으로 부모님 세숫물 떠드리기, 문안드리기, 이웃 어른들에게 볼 때마다 인사하기... 등을 실행하였다. 융통성 하나 없는 훈장님은 반드시 확인을 하셨다. 문장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암송할 수 있었으며,동시에 궁행(躬行)이 뒤따랐다.
이야기를 계속하면, 국민학교에 다녔을 때에 도덕 선생님께서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고 하셨다. 의미 있는 말이다. 명심보감을 지금도 외면 실천궁행을 신조로 삼아왔다. 그 책 한권이 시골에서는 낫 놓고 기억자로 모르는 사람(目不識丁의 無識者)를 유식군자(有識君子)로 많이 만들었다. 사람이 책을 만든 것보다는 책이 만든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지금도 책을 읽으면서 실천할 사항을 메모하여 책이름을 따서 실천궁행의 프로젝트를 만들어 옮겨 본다. "Ping"이라는 책을 읽고 “Ping Project"를 구상하여 지금도 실행하고 있다. 프랭클린(Franklin)의 자서전에 나오는 실천덕목 포맷을 사용하기도 하며, 수첩에 적어서 시간 날 때마다 되새겨 보면서 몸으로 익히고자 노력하고 있다.(이대영) |